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육군/수색대 (문단 편집) == 편제 == 국방부의 한국전쟁사 전투별로 아군 전투서열을 참조하면 --이미 과거부터 사단 수색대와 함께 연대 수색대 등이 존재하였음이 확인된다--.(수색소대, 수색분대의 형태로 존재했으며 사단수색대대의 경우 기존 연대 수색소대와 대대 수색분대, 정찰소대, 정찰분대 인원등을 바탕으로 대대급으로 재창설됨) 수색중대는 적 민경대대에 대응하여 아군에서 편제했던 전초중대들로 연대 섹터의 DMZ에 위치한 GP 방어를 담당하면서 DMZ 내에서 작전을 맡는 사단 수색대와 병존하였다. 이러한 사단 수색대의 시작은 우리나라 최초의 특수전 부대의 시작이었다. 월남전 시기부터 각 연대별로 운용되던 수색중대는 1977년부터 1983년 사이[* 부대마다 시기가 약간씩 다르다.] 단계적으로 해체되었는데, 일부 인원들은 원래 존재하던 사단 수색중대와 같이 사단 수색대대 창설요원이 되었고, 일부 인원들은 각 대대별 수색소대 창설요원이 되며 육군 수색대 편제는 각 보병대대별 수색소대와 사단 수색대대 체제로 변경된다.[* 그래서 이 시기부터 90년대 중반까지 복무한 인원들 중에는 대대 수색소대 출신들이 존재한다. 대신 수색중대 출신들은 없다. 일반 보병대대인데 간혹 주둔지 내에 사용하지 않는 --낡은-- 헬기 레펠/패스트로프 훈련용 헬리콥터 모형탑이 아직 남아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수색소대의 흔적이다.] 참고로 수색대대는 자체적으로 집체교육을 시키고, 수색소대는 신병들을 1년에 1~2회 수색대대에 파견해 집체교육을 받도록 하는 식으로 운용되었다.[*이 시기 육군 전방 사단 수색대 외에 DMZ 내에 있는 GP 작전과 강안지역 수색/매복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민국 육군/지상정찰중대|전초대대]]를 운용하고 있었는데 이 전초대대는 이후 [[대한민국 육군/지상정찰중대|정찰대대]][* 수기사(맹호, 기계화), 1사, 2사, 3사, 5사, 6사, 7사, 8사, 9사, 11사(기계화), 12사, 15사, 17사, 20사(기계화), 21사, 22사, 23사, 25사, 26사(기계화), 27사, 28사, 30사(기계화)에만 존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수색대와 임무가 중복된다는 이유로 기계화 사단의 기갑정찰대를 제외하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육군/지상정찰중대]]를 참고.] 육군 수색대는 1993년부터 1998년 사이에 다시 한번 편제의 변화를 가지게 된다. 보병 사단 전초대대(정찰대대)가 사라지게 되며 GP 작전을 수행할 부대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해체된 정찰대대 출신 인원들을 각 연대로 보내 연대 수색중대를 재창설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대대 수색소대도 단계별로 해체되며 일부 인원은 대대에 잔류해 대대 수색분대로 운용되며, 일부 인원은 정찰대 출신과 함께 연대 수색중대를 재창설하게 된다.(전초대대가 해체되면서 전초대대의 임무를 기존 사단 수색대대와 연대 수색중대가 하게 되었다. 연대 수색중대가 전초대대 해체 후 창설된 것이 아니다.)[* 대대에 잔류한 일부 인원에 의해 거의 분대급으로 남아있던 대대 수색소대 역시 1998년 이전에 모든 부대에서 완전 해체되었다.] 과거 사단 수색대에서 교육을 받던 대대 수색소대와 달리 다시 창설된 연대 수색중대는 사단 수색대대 파견교육 대신 자체적인 집체 교육을 실시하며, 자체 흉장을 사용하였다.[* 전초대대/정찰대대 시절의 흔적이 남아서다. 전초대 시절엔 신교대 수료자들 중 최우수 신병들은 전초대대에서 뽑아가고, 2순위 신병들을 수색대대에서 데려갔는데, 이후 정찰대는 논산에서 정보병과를 받고 오는 인원으로 바뀌며 신교대 최우수 신병들을 수색대에서 데려가게 되었다.] 수색중대와 수색대대는 평시 작전을 GP임무와 비무장지대 내 수색 및 매복임무로 나뉘고 그 임무를 대략 5년~10년 단위로 교체를 하였다. 지금은 수색대대가 비무장지대 내 수색과 매복임무를 수행하고 수색중대가 GP작전을 수행으로 고정되었고 이는 2001년 중반~2002년 후반에 단계적으로 교체한 결과이다. 즉 두 부대 모두 동일한 임무를 교체하며 작전을 수행했었고 또한 95년 중반에서 96년 중반 사이에도 임무 교대가 있었다. 6.25 전쟁 때는 적 후방 깊숙히 침투하여 정찰 감시. 목표 타격.후방교란. 보급로 차단. 통신시설 파괴. 지휘관 생포 등 군단. 사단사령부의 눈과 귀가 되어 전술적 척후병이 수행해야 하는 특수작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월남전에 파병되어서도 적 후방 심장부까지 깊숙히 침투하여 적을 교란하였고 이후 특전사 제7, 9, 11, 13 여단 창설시 부족한 인원을 각 부대 수색대에서 1중대씩 배속했으며 특공여단, 특공연대 창설시 1개 중대씩 배속시켜 특수부대 창설의 모태가 되었다. 1980년까지는 특전사 편제인 지대 편제로 운영되다가 1981년 기존 사단수색대(중대 이하급 규모의 독립부대)에서 대대급 편제로 개편하면서 연대 수색중대 전초대대, 정찰대 인원들을 배속하여 몸집을 키웠다 결국 1996년까지 최종 대대급 정규편제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정찰대가 해체되면서 정찰대인원 대부분이 수색대로 이동하였다.(노태우 대통령이 창설하였고 수색중대, 수색대대와 임무가 겹쳐서 통합 및 해체됨) 마찬가지로 연대 수색대 역시 사단 수색대의 편제처럼 몸집을 불려갔다.하지만 육군 3각편제의 영향으로 기존 6개 소대에서 2개 소대를 수색대대로 배속시키고 현제처럼 3개소대를 갖고있는 3각편제로 최종 변경되었다. 현재 4개 중대로 운용중이며 일반 부대의 사병 체제와 달리 특전사처럼 장교, 부사관이 주축이 되는 직업군인 체제의 특수임무부대로 개편을 완료하였다.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편제된다. 즉, 현재는 사단, 여단 수색대는 (육군 내에서 최정예로 간주) 임무 및 인원, 작전 반경등의 차이가 있어서 사단 수색대만 전역 후 경찰특공대, 소방구조대, 해양경찰특공대의 공채 자격은 사단 수색대 출신에게만 부여되고 있다. 수색대대는 본부중대, 1, 2, 3중대이며 각 중대마다 3개 소대가 있고 3개 소대는 3개의 팀으로 이루어진다. 팀 편제는 팀장 이하 *명의 각 주특기별 다수의 부사관과 소수의 병으로 구성된다.[* 실제 DMZ작전을 수행하기에 자세한 편제와 인원은 보안 상 표기하지 않음.]팀 단위 임무를 수행하기에 결손 인원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전 인원이 모든 직책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또한 각종 화기에 대한 교육훈련을 받는다. 전 인원이 K1(K1A), K2(K2C1), K201, K3 사격 훈련을 받으며 적진이 작전지역이므로 적성화기인 AK 소총 실사격훈련 및 다루는 교육을 받는다. 수색대대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육군 27사단 수색대대의 경우 AK 소총 47형 및 권총 3가지 버전을 모두 분해 조립 사격 및 총기수입을 직접 하도록 교육 훈련한다. 적성화기 교육의 목적은 인민군에게 총을 뺏어서 쏘거나 작전 중 주워서 사용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